남정휴 - 키에 관한 단상

키에 관한 단상

 

우리는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자기의 고유번호를 부여받는데, 이게 그 이전 초등학교 때의 방식과는 다르게 키 순서대로 정해집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간 첫날 두려움과 설렘을 가지고 만난 자리에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 복도에 일렬로 쭉 세워 놓고 키에 의한 서열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좀 똑똑한 아이들은 꼰지발을 서서라도 키 큰 쪽에 서게 되고 그렇지 못한 조금은 띨띨한(?) 아이들은 자기의 키보다는 조금 손해 보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눈속임이 선생님에게 발각되면 당연히 꿀밤 한 대와 약간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철들까 말까 하는 무렵부터 타의에 의해서 서열이 정해지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의 출발이 키의 상대적 비교에 의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도 잠재적으로 키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에 이르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번호 매김은 아마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황당무계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키가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직립을 시작하면서 시선의 높이가 높아졌고 손이 자유로워짐으로써 현재 인류의 진보와 문화 발전의 초석을 마련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인간의 평균 신장은 꾸준히 성장한 것이 사실입니다. 즉 신장이 크다는 것은 좀 더 발전된 인간의 모습으로 비춰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요즘의 연구가 얘기하는 것은(하긴 하도 의학적 연구의 결과가 자주 바뀌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인간의 신장은 성장기 단백질의 섭취가 유전적 요인보다 더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것을 극명하게 증명하는 예는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의 신장의 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사람들을 왜놈’, 즉 키가 작은 사람들로 폄하해서 불러 왔습니다. 그런데 60년대 70년대를 지나면서 부터는 일본 청소년들의 키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평균키를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50년대 이후 일본의 생활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유제품 섭취량이 많아지면서 초래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한국 청소년들의 키가 일본의 청소년들의 그것보다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이 공업화와 함께 잘살게 됨으로써 청소년들의 단백질 섭취량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키가 크다는 것은 부유하게 성장했다는 것을-물론 부유하게 자랐어도 입이 짧아서 안 먹는 경우를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암시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미국 행동과학자들의 연구입니다. 정치학에서도 많이 인용되는 부분인데, 일반적으로 키가 큰 사람이 키가 작은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신뢰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많이 증명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미국의 대통령들도 키가 작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키가 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링컨 대통령일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키가 큰 것을 선망한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는 남에게 불신을 받기보다는 신뢰를 얻고 싶어 할 테니까요.

 

이러한 여러 가지 면들이 우리가 본능적으로 키가 커지고 싶어 하고 키가 작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러한 분노는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있고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비교되는 상태에 있어서는 더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골퍼 중에 치치 로드리게스라는 골퍼가 있습니다. 골프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그리 낯익은 이름은 아닐지 모릅니다. 자그마한 키에 깡마른 체구 그리고 서부영화에 나오는 멕시칸 총잡이들이 쓰는 밀짚모자를 쓴 아주 까무잡잡한 별볼일 없는 골퍼입니다. 지금은 이미 은퇴를 해서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마는 정규 PGA Tour에서 뛸 때도 성적은 그리 신통한 편이 못 됐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PGA 경기를 시종일관 따라 다니며 관전한 적도 있지만, 성적보다는 인기, 특히 미국 아줌마들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그리 잘생긴 것도 아니고 성적도 별로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열광했습니다. 저도 좋아했습니다. 특히 버디를 잡았을 때 영화 조로의 주인공처럼 퍼터를 옆구리에 붙이고 칼을 빼듯이 빼서 휘두르고 끝내는 허공중에서 상대방을 찌르고 왼손으로는 호주머니에서 빨간 손수건을 꺼내서 칼(퍼터)을 쓱 닦고 그 칼을 다시 옆구리에 차는 제스처를 할 때는 모두들 환호와 함께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더 압권인 것은 박수와 함께 스페인의 투우사가 모자를 벗어서 가슴에 대고 한 발을 물리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듯이 골프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다시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치치가 다시 버디를 잡기를 고대하면서 다음 홀로 따라가곤 했습니다. 이것이 치치를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치치 로드리게스는 미국의 식민지인 푸에토리코의 부유한 골프장 옆에 사는 가난한 소년이었습니다. 항상 감명 깊은 얘기는 이렇게 시작하듯이 말입니다. 어린 시절 특히나 키가 작았던 치치는 작은 키를 숨기기 위해 몰래 꼰지발을 서서 캐디로 고용되곤 했습니다. 그 당시엔 벽에다 금을 그어 놓고 키가 그 금을 넘어야 캐디로 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하루 캐디로 버는 25센트의 캐디피가 가족의 생계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어쨌든 그리그리하여 프로골퍼가 되어 미국 PGA까지 진출하게 된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영원한 캐디였던 그는 자신의 현역시절 내내 매년 한번씩 PGA의 모든 캐디들에게 파티를 열어 주고 그날 하루만은 그도 다시 캐디로 돌아가서 그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크게도, 때로는 작게도 모두 입지전적 인물이듯이 여기까지는 그도 다른 입지전적 인물들과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치치의 다음 이야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의 키는 땅바닥에서 머리끝까지의 길이로 재는 것이 아니고

가슴의 크기로 재는 것이다.”

저도 숏다리의 입장에서 이 글을 처음 본 순간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항상 생각일 뿐 비록 숏다리지만 차라리 땅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재는 것이 가슴의 크기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는 유혹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높이는 쉽게 잴 수 있지만 가슴은 너무나 재기가 힘이 듭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숏다리를 잴 수 있는 자보다도 훨씬 작은 자로 재도 가슴을 재기에는 항상 그 길이가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길이를 능가하는 자로 잴 정도의 가슴의 크기를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가슴운동(?)을 해야 할까요. 세상의 큰 키를 가진 사람들과, 그리고 그리 크지 않은 키와 더 큰 가슴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남 정 휴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