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 시골 그리고 나

누구나 인생 내 마음대로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지요.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지요. 또한, 누구에게나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많지요. 숱한 사람이 꿈을 꾸지요. 귀촌이 자연과 같이하는 삶이라고, 로망이라고 하는 사람 많지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모두 도시에 있고, 하는 일이 번잡한 도시를 떠나서는 할 수 없는지라,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이런저런 핑계 대며 그러니 어쩔 수 없어 라며 自慰하고, 살고 있을 뿐이지요. 감정은 현재이지만, 욕망은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고 하지요. 지금은 못하지만, 내일, 아니 한달 후, 안되면 일 년 후에라도,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하면서 그냥 오늘을 살고 있지요. 그렇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포기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나이 들면 도시에 살아야 된다고. 하며 살고 있지요.

 

언제부터인가 소란스러운 도시가 점점 싫어지고, 분주한 거리는 낯설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지고, 세상사 듣고 보는 것조차도 짜증이 나고, 도시의 고층빌딩에 짓눌리고. 제자리만 뱅뱅 돌며 누군가 손대지 않으면 영원히 똑같은 가락만 반복하는 고장 난 유성기처럼, 삶이 무언가 하고 수없이 묻고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그런 내 자신이 안타까워지고, 탈진해서 드러눕고 싶을 지경에 까지 가고. 그래서, 아무런 구속 없는 곳으로 그냥 가고 싶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시골로 왔지요.

아무런 구속이 없는 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는 있을까 ?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에는 화려한 불빛 대신 밤하늘에 별들이 빛나고, 높은 빌딩 대신 기암괴석이 자태를 자랑하는 산이 있고, 길을 빽빽이 메우는 자동차와 소음 대신 울창한 숲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있지요.

초라해도 벗은 몸 가릴 옷 있고, 진수성찬 아닐지라도 먹을 것 있고, 비 안 맞고, 추위 피해 누워 잘 곳 있으니, 그저 날이 밝아오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고,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 세상 순리대로 살면. 가진 것 없는 자의 즐거움이 아니지 않을까 ?

 


1. 자유롭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나른함까지 느껴지지만, 주위에 보이는 산과 들은 아름답고, 시골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고 상쾌하다. 해야 할 일은 매일 매일 새로 생긴다. 그제 밭 갈아, 어제는 씨 뿌리고 오늘은 풀 뽑지만, 며칠을 빈둥빈둥 하면 또 다시 풀이 밭을 뒤엎을 것이고, 또다시 풀을 뽑아야한다. 안 해도 되지만 한다.

 

밭을 갈고, 씨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을 하고 그로부터 얻는 기쁨,

체면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싫어도 억지로 해야 했던 것들로부터 해방.

미워할 사람도 없고, 탐해야 할 것도 없으니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여유.

자연에 녹아드는 삶, 언제나 노동으로 땀을 흘리는 삶 - 자유롭고 안락한 삶이 아닐까 ?

나옹화상의 禪詩가 생각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살다보면, 인생 별것도 아닌 것을.

 

 

2.그 곳에 가고싶다

 

창문 앞에 펼쳐진 풍경 밖으로 가고 싶다.

어딘가로 가보자.

왜 이렇게 어느 곳이나 사람들은 많을까?

부딪치지 말고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지나가자.

걷고 싶다.

저기로 가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언제든, 어디든 가고 싶으면 간다.

또 돌아올 곳 있으니 떠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물처럼 낮은 곳을 찾아 가든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든지,

아니면 구름처럼 정처 없이 가든지.

어찌되든 그냥 떠나보자.

나그네가 되어보자.

 

울진 금강소나무 숲으로 간다.

가는 길에 이정표 따라 월송정에 간다.

바다를 바라보며, 옛 선조들이 벼슬 버리고 낙향해서 즐기던 풍류를 떠올린다. 시 한수 주거니 받거니 읊으며 벌주라도 마셨을까?

아리따운 여인이 가야금 한 곡조 튕기면서 따라주는 술 한 잔을 마셨을까 ?

나는 여기서도 소나무 숲을 걷고 내일도 또 소나무 숲을 걸으러 간다.

 

 

3. 여기가 어디인가 ?

 

중국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안개 사이에 나무 그림자가 흐려지고 구름 속에 산봉우리 형체가 허물어진다

뻐꾸기가 운다. 그렇게 쏟아지던 비는 이제 그만 오려나 보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으며 계곡과 능선 사이를 헤집으며 춤을 춘다, 산봉우리가 보이다, 여기가 어디인가? 신선이 노니는 무릉도원은 아니지만, 어딘가 선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바로 산으로 가자. 혹시 선녀를 만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정말 만나면 어이할까. 비 온 후라 계곡에는 물이 많아졌다. 선녀탕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떠내려온 낙엽만이 선녀탕에서 헤엄을 친다. 선녀가 목욕하던 물 속에서 목욕을 하는 저 낙엽이 부럽다. 아니. 혹시 저 낙엽이 날개옷은 아닐까? 매일 꿈같은 날이로구나.

산봉우리에 올라섰다. 내려다보이는 모든 것이 왜 이리 작을까? 아래에서 보았을 때는 그다지도 크게만 보였는데. 꼭대기 올라오면 아래 있는 것들은 모두 작게만 보이는 것인가?

눈으로 보면 그렇지만 마음으로 보면 안 그럴 텐데. 마음의 문은 아직도 닫혀있나 보다.

내려가야겠다. 아직도 나는 눈으로밖에 볼 수 없는 소인배이니까. 올려다보는 것이 편하다.

오늘은 더 이상 비가 오지 않겠지.

 

 

4. 변해야 한다.

 

새롭게 가꾸어야 할 것들이 많다.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양복 입고 넥타이 메고 구두신고 아스팔트 걸어 다녔다.

이제는 면바지 작업복 입고, 장화 신고 흙 밟고 산다.

흙 묻은 손을 바지에 쓱 한번 문지르고 흙 묻은 바지를 털어본다. 왜 바지에 문질렀나.

안 그랬으면 바지를 털지 않아도 되는데. 바지에 닦지 말고 수돗가로 가서 물로 씻었으면 바지를 더렵히지 않고, 또 하나의 빨래를 더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나도 안다. 묻지마라. 그런데 왜 그러냐고? 그래도 누가 무어라 하는 사람 없으니까. 내 마음대로다. 바지 한 번 더 빨면 되지. 잘못된 것 없다. 여기는 시골 텃밭이니까.

희던 얼굴은 검어지고 검버섯이 생기니, 시골 노인 되었다고 한다. 시골 살고, 나이 들면 시골노인이지. 당연한 걸 나무라지 마라. 세월이 범인이다. 나는 죄진 것 없다. 시골이란 단어는 인정하마. 내 잘못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시골 청년이다.

장갑은 끼고 일해야겠다. 손이 점점 거칠어진다. 당뇨검사 하러 들른 보건소에서 손가락에 침을 찌르며, 간호사가 말했다. “손이 너무 예뻐요하고.

그저 날이 밝아 오는 것과 어두워지는 것.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것이 세월 가는 것을 가르쳐 준다..

 

 

5.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오른다

 

척 봐도 도시에 있는 집을 그대로 모방해서 설계한, 겉모습은 그럴 듯 해 좋아 보이지만 시골살이에는 도무지 실용적이지 않다. 집 짓느라 얼마가 들었든 상관없이 주위 사람들이 지나가며 던지는 한마디 집이 참 예쁘네요소리 듣고 기분 좋은 것. 한 가지 빼면, 겉모습 번지르르한 집을 지을 이유도 없다. 아궁이를 만들어, 나무를 때서 온돌방을 만들고, 그곳에서 잠을 자고, 비오는 날도 비 맞지 않을 수 있는 공간 하나 만들어 쉴 수 있고, 흙바닥이든 무엇이든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고 땅의 기운을 받으며 살고 싶다. 시골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평범하고 소박한 시골집을 지을 걸.

 

기와 속에 참새들이 집을 지었다. 너무나도 많다. 아침 참새소리에 잠을 깬다. 지붕 밑 물받이에 앉아, 데크 위에 똥을 싼다. 뽕나무 오디 열리면, 똥색은 아주 예쁜 보라색이다. 가끔 알에서 막 깨어 난 듯한 어린 참새가 떨어져 죽어있다. 약한 놈을 어미가 밑으로 떨어뜨리는 모양이다. 집을 짓느라 지푸라기를 잔뜩 물어다 놓다가 물받이에 떨어뜨려 비가 오면 물이 넘쳐흐른다. 물받이 속에 참새가 물어다 놓은 것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이놈들아. 너희들 먹고 자고 하게 해주었으면, 귀찮게는 하지 말아야지. 안 그러면 쫒아낸다.” 가을이 되면 참새들은 벼가 익는 들판으로 나가 우리 집은 조용해진다. 참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산까치가 쳐들어온다. 맛있게 익기도 전에 사과는 그들 차지이다. 허수아비도 독수리연도 소용없다. 누가 새대가리가 돌대가리라고 했어?

실컷 먹어라. 어차피 내가 키운 사과 맛없---. 나는 맛있는 사과 돈 주고 사 먹을란다.”

 

 

6. 손님이 왔다

 

산비둘기가 콩밭에서 싹이 트면 어린 싹을 쪼아 잘라 놓는다. 콩 씨를 뿌릴 때는 한 구멍에 3알 씩 넣으라고 한다. 하나는 새 몫이고, 하나는 땅속 벌레 몫이고, 나머지 하나가 농부 몫이란다.

까만 밤에는 고라니, 오소리, 야행성 동물만이 채소밭을 배회한다. 그들이 남긴 발자욱이 깊고 크다. 하지만 난 그들을 만날 수 없다. 옥수수밭이 엉망이 되었다. 밤사이 오소리가 습격을 했나 보다. 아직 완전히 여물지도 않았는데 내가 수확하기 전에 먼저 먹겠다고 이놈들이 선수 쳤다. 내가 게으른 것이 아니고 그 놈들이 부지런한 거다. 그래야 내 마음이 덜 슬프다. 고구마밭은 지켜야지. 멧돼지들이 오지 못하게 그물망이라도 쳐 놓자.

 

바람은 솔솔 불고 가을 햇볕 쨍쨍한 한낮에 고추잠자리 빙빙 돌고, 벌들은 윙윙댄다. 나른하다. 슬그머니 졸음이 찾아온다. 그늘 아래 돗자리라도 펴고 한숨 자고 싶다.

! 어찌하나. 고추를 따야 하는데.

친구가 왔다. 술이나 한잔 하잔다. 그래. 오랜만인데 술 한잔으로 만족하겠는가? 두잔 세잔인들 못하겠는가? 얼마 만에 보는거냐? 오랜만이다. 그동안 별고 없이 지냈지? 건강은 괜찮고? 어떻게 지냈어? 지나간 옛일 들추며 추억 속을 헤메이다 거나하게 취한 밤, 찾아온 이가 어디 간지도 모른 채 잠들어 버렸다.

친구야. 어디 갔냐? 또 만날 수 있는거지?

 

 

7. 음악이 들린다.

 

산수화 속에서 삶의 의미를 묻다가, 아무리해도 다다를 수 없는 아득함에 망설이다가 그림 속으로 냅다 뛰어들었다. 그림 속 노인이 되고 싶다. 개울가 정자에 앉아 친구를 불러 바둑이나 두자고 할까?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할까?

풀벌레 소리와 풀잎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고요 속에서 음률이 부드러웠다, 강해졌다, 귀를 간지른다. 도시의 참을 수 없는 소음에 잃었던 청력이 되살아나, 여리고, 오묘하고 신비함이 깃들여진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천상의 노래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애닯음인가?

깊어가는 밤 적막함을 뚫고 한 마리 개가 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 집 저 집 개들이 덩달아 합창이라도 하듯이 함께 짓기 시작한다. 산짐승이 마을에 출몰한 모양이다.

풀벌레 소리를 반주 삼아 우는 개구리 소리 는 감미로운 사랑의 세레나데였는데, 개짓는 소리는 어두움과 수많은 별빛 조명 아래 연주하는 하드 록이다. 환한 보름달 빛에 주위가 환해지니 시끄러운 하드 록 음악은 멈추었다. 달빛이 소란함을 멈추게 하니 적막함이 산기슭 마을에 깊숙이 젖어든다. 사랑의 세레나데 - 개구리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너는 어찌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해 밤새 울기만 하니?

 

100여 미터 떨어진 밭에 50 후반이나 60 초반인 듯한 사람이 농막을 짓고 주말이면 온다. 고향은 멀지 않은 상주 화동면이란다. 그는 항상 음악을 틀어 놓고 밭을 일군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노래들이다. 소위 7080 노래다. 음악을 무지무지 좋아하는가 보다. 우리 밭에서도 크게 들릴 정도로 볼륨을 높여 놓는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몸부림치며 고된 삶을 위로 받고 잊으려 했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 온 듯하다. 젊어질 수 있다면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도시로 돌아가기 싫어 그냥 이대로 젊은 늙은이로 살까?

깊은 밤 풀벌레 소리 자장가 삼아 일찍 자자.

 

* 에필로그

불현듯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들고 다이얼을 누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부질없는 그리움만 생겼습니다.

소란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끝없는 욕망을 털어내고 싶어서, 주위에 나를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왔는데, 그저 미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모르는 것에 대한 아쉬움만이 오만가지 번민에 빠지게 합니다.

언젠가 원했던 마음을 얻으면 그때는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겠지요.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구병산 기슭에서 村夫 이 용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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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으로 내려가기 위해 수 년간 고심끝에 계획한 걸 술 좌석때마다 밤새도록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해서(똑같은 얘기) 자정넘어 집에 갔더니 너는 친구도 아니다라고 한게 벌써 10년이 넘었네. 
    그 얘기에 우빈이는 새벽까지 고생했지  ㅎㅎ. 
    암튼 이름없는 구병산 봉우리에 용구봉이란 이름도 짓고 
    그곳 생활에 만족하며 인간답게 살고있는 용구와 민복엄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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