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대 은사님. 24회 졸업 50주년 축사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져 가는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24회 제자 그리고 후배 여러분,

올해로 졸업 50주년이라니,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네요. 먼저 지난 반백년 여러분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룩한 혁혁한 업적에 대해서 경의와 축하를 보냅니다. 그리고 고희를 맞은 여러분, 앞으로 아름답게 늙어갈 것을 축원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70이든 80이든 90이든 인생은 다 살 만합니다. 심지어 노년기를 인생의 황금기라 하기도 하지요. 노년은 젊음이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젊음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젊음에는 너무나 많은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젊음은 미숙합니다. 노년은 이러한 일생의 그림에 마지막 터치를 가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날 가족의 짐, 직장의 짐 등 여러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았다면, 이제 모든 짐을 벗고 앞으로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살고,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그 중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 독서입니다. 그동안은 외향적으로 살면서 주로 실용적인 독서를 하였다면, 이제는 내적으로 방향을 돌려 나를 위한 독서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축복하고, 나 자신을 노래하면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런 즈음에 졸저(拙著)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오랜 동안 동양고전에 대해 공부해오면서 정년 후에 그 결실로 논어 해설서(‘논어의 혼’ 전5권)를 펴냈습니다. 내 나름으로는 그 많은 논어 해설서들과는 판이한 혁신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고 자부하면서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시대에도 논어를 읽을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우문입니다. 이 시대에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논어는 어디 없는가? 이것이 현명한 질문일 것입니다. 세상은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 기계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진화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인간은 심히 탐욕스러워지고 더욱 물질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갈수록 심한 갈등과 마찰로 몸살을 앓고 있지요. 또한 도처에서 투쟁과 폭력이 난무하고, 학교 교실도 우리가 공부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변질되어 이제는 기쁨과 활력으로 넘쳐나지 않고, 사제 간에도 신뢰와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혼탁한 와중에 굳건히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시로 이 세상에서 잠시 물러나 홀로 조용히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인문학 서적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듯합니다.

내가 ‘논어의 혼’을 나누는 이유도 이런 독서에 활용해 보라는 취지에서입니다. 그러나 책을 나누면서 다소간 염려가 되는 것은 여러분이 책을 읽을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이 70에 새삼 무슨 독서냐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이는 늙은 스승의 한갓 기우이길 바랍니다. 다만 늙으면서도 젊게 사는 비결은 늘 배우는 자세로 사는 것이라는 점을 첨언합니다.

이 책은 국어 선생의 자세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논어란 텍스트로 수업을 하는 기분으로 쓴 것입니다. 나는 평생 국어 선생의 기분으로 살아온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며, 내게 국어 선생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천직으로 여깁니다. 여러분은 50년 전 함께 국어 수업을 한 장면을 회상하면서 읽으면 새삼 감회가 새로울 것입니다. 다른 선물과 달리 책은 즐겁게 읽을 때 준 보람, 받은 보람이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다음에 ‘논어의 혼’의 주요 특징을 적어 여러분의 관심을 돋우려 합니다.

첫째, 엄청난 해설의 깊이입니다. 이전의 수많은 논어 해설서들이 저자의 지식을 통한 어구 풀이 위주였다면, 이 책은 예수, 붓다, 소크라테스, 노자, 라즈니쉬 등 깨달은 이들의 지혜로 그 정신을 천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둑에서 9단 기사의 기보를 5, 6급 동호인이 아니라 다른 9단 기사가 해설하는 것에 비유될 법합니다. 그간 많은 이들이 논어를 읽고 그 말을 알았지만 그 정신은 알지 못했으며, 그들은 지혜를 얻지 못하고 지식만 풍부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 논어의 현대화입니다. ‘논어의 혼’은 논어의 업그레이드된 해설서일 뿐만 아니라, 논어 자체를 업데이트한 점에서 다른 해설서들과는 근본적으로 그 지향이 다릅니다. 삶은 하나의 흐름이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논어도 고정된 것일 수 없으며 이런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것이고 현대인의 삶에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지혜도 진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수천 년 전의 논어를 이 시대에 맞게 풀이한 가치는 원본을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두고 내 은사인 고 이응백 교수가 공자가 봐도 감탄할 만하다고 한 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셋째, 논어 그 자체보다 독자를 중시한 점입니다. 이 책은 논어의 체제를 유지하고 내용 전체를 해설하는 타성에서 벗어나 꼭 필요한 것만 엄선해 다루었습니다. 논어는 방대한 책으로 그 전체는 공자 당시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에는 맞지 않거나 불요불급한 대목도 허다하므로, 이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풀이한다는 것은 결코 바쁜 현대인들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핵심적인 구절들로 말하면, 이는 참으로 시대를 초월해 영원한 인류의 지혜에 해당한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논어의 가치는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처럼 빛나는 것입니다.

글이 옛날 종례처럼 딱딱해진 듯해 목에 힘을 빼고 말해야 할 듯하네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에요. 독서도 즐겁게 하고 산책도 즐겁게 하고 일도 즐겁게 해야지요. 무엇이든 억지로 하는 것은 고역입니다. 이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내가 읽은 얘기를 여러분과 함께 음미해보고자 합니다.

삽화 하나, 어느 마을에 사원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몇 명의 노동자들이 그것을 위해 돌을 절단하느라 바쁘다. 지나던 나그네가 무엇이 세워지는지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는 노동자 한 명에게 가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 사람은 슬프고 심각하게 보였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보였다. 그 노동자는 나그네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당신은 내가 돌을 자르고 있는 것이 안 보입니까?’하고 말했다. 나그네는 다른 노동자에게 가서 동일한 질문을 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도 역시 슬프게 보였지만 그러나 화가 나 있지는 않았다. 그는 해머와 정을 내려놓고 나그네를 쳐다보며 침울하게 말했다. ‘나는 빵을 벌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일을 다시 시작했다. 나그네는 사원의 정문 부근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세 번째 노동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행복한 기분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친구여,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나그네는 그에게 질문을 했다. 그 노동자는 아주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사원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돌 자르는 일과 그의 노래 부르기를 계속했다.
세 사람 모두 돌을 자르는 동일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일에 대한 그들의 자세는 서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세 번째 노동자는 노동을 축제로 바꾸었어요. 그는 일과 노래를 함께 할 수 있었지요.

삽화 둘, 남편과 사별한 부인이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옆에는 아들이 서 있었다. 한 조문객이 고인에 대한 회상에 잠기면서 물었다. ‘어쩌다가 돌아가셨어요?’ 미망인이 말했다. ‘불쌍한 양반 같으니, 임질로 죽었답니다.’ 또 다른 여자 문상객이 물었다. ‘고인께서는 왜 돌아가셨나요?’ 미망인이 대답했다. ‘임질이랍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한쪽으로 끌고 가더니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 왜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임질이 아니라 설사로 돌아가신 거잖아요.’ ‘그래. 나도 안다. 얘야.’ 미망인이 말했다. ‘하지만 똥 싸다가 죽었다는 것보다는 즐기다가 죽었다고 말하는 게 더 낫지 않겠니?’
노년은 무조건 즐거워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즐겁다면 죽음이라는 목적지 또한 즐겁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여행이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왜 목적지는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내 경험을 통해 첨언합니다. 인생 일흔 줄에 들어서면 이제 노인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그러나 노인으로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할아버지라고 헛기침만 하고 뒷짐 지고 다녀선 안 돼요. 나름대로 일이 있어야 하고 경륜을 펼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내가 ‘논어의 혼’을 저술한 것도 70대입니다.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뭣인가 배우고 갈고 닦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삼 이 나이에’ 하는 망설임은 금물,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낫지요. 나는 70에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혀 지금 운동 겸 취미로 즐기고 있어요.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진리를 이따금 반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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