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덕 - 지난 어린 시절

수원 매교동에서 태어나 부모님 슬하에서 동생들과 함께 지낸 어린시절은 기억속에만 남은 꿈같은 세월이었네...지금은 흑백사진에만 남은 시절....

 

세류국민학교를 동생들과 함께 다니고 4학년때인가? 도시락을 못 싸오는 많은 급우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옥수수빵을 먹고... 내는 아버님이 공무원이라서(?) 도시락을 싸갔는데....근디 철없는 나는 옆자리 친구들과 같이 옥수수빵을 넘 먹고싶어... 평소 운동부(농구부)애들은 옥수수빵 먹는 것을 보고... 내도 농구하겠다고 자원(?)을 하였는데... 담당 선생님이 드리볼테스트를 하여... 불합격인데... 하필이면 당시 울 아버지가 장학사라서 자르지는 못하고 빵보이(운동선수들에게 빵 날라주는)를 시켜주어 소원을 풀었네... 두달만에 짤렸지만... 그간 옥수수빵은 실컷 먹었던 기억...

 

5학년 때부터 담임선생님에게 과외공부를 하였는데... 여자애들하고 함께여서 공부는 모르겠고 그냥 좋았던 때였지... 그러다 6학년이 되어... 서울로 진학한다고... 신풍국민학교 다니던 장우영과 둘이서 과외를 하였으나... 결국 아버지가 희망하셨던 경복중학교(아버지가 경복18)는 성적이 안되어 어렵다고... 용산중학교로 한 것이 현재의 내 인생을 만든 계기가 되었네.

 

용산중학교 시험본다고... 나와 우영이, 두분 아버님과 함께 시험 전날 서울역에서 병무청 넘어가는 언덕에 있던 진흥여관에 함께 투숙하고 시험치르고, 체력시험.. 100m달리기 6명중에 꼴찌하였고... 그때 아버지가 해방촌 어느 집 창에서 내가 달리기 꼴찌하는 것을 직접 보고 계셨다는데...

 

그후 어느날 저녁 늦게 시험결과를 Radio로 발표하는데... 부모님은 Radio에 귀 귀울이고 계셨고... 내는 차마 함께 들을 수가 없어서 일부러 자는 척을 하였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머니가 내 뺨에 뽀뽀를 해 주셨고 아버지는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그래서 합격한 것을 알았지.

다음날 합격선물로 YAMAHA하모니카와 전승현스케이트를 받았지. 그 하모니카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 볼 때마다 부모님생각이 나네.

그리고 동네에서 머리를 빡빡 깍고 아버지와 서울로 와서... 신신백화점에서 교복과 교모, 가방을 구입하였는데... 내 머리통이 큰 것을 그때 알았네...

 

이리하여 창경원으로 수학여행 다니던 수원의 촌놈이 이제는 매일 서을로 칙칙폭폭 증기기관차를 타고 등하교를 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많은 변화가 시작된 것이었지.

덕분에 최병문, 엄태성, 조병식, 전종석, 장우영, 이동훈, 윤석철, 최재경, 이병재 등등 많은 친구들이 생겼네.

 

천안에서 출발, 서을역까지 가는 통학열차는 수원역에서 하절기에는 05:20출발, 동절기에는 05:40출발... 학교수업이 07:30에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집에서는 04:40에는 나와야 했으니... 내보다도 어머니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네.

통학열차라서... 1967(통학생) 기차540/Pass를 발급받고...

 

아버지는 거의 매일 24:00 통금시간이 되어야 귀가하셨고... 어머니는 나의 점심밥을 준비하시느라 03:00에 일어나셔서... 연탄 사용하는 부엌에서 밥하시고.... 세월이 지나고보니 정말 나 땜시 고생을 억수로 하신 어머님 생각하면 맘이 아프네.

겨울철에는 발이 시려워 군화를 신고 다녔는데.. .어머니가 밤에는 부뚜막에 군화를 놓고 데워 주셨네. 水原驛까지 걸어가면 다시 차가워지지만 그때는 어머님의 갚은 사랑을 제대로 몰랐네....

 

특히 겨울철에는 그 놈의 통근열차 매일 연착... 증기기관차의 물이 얼어서 그렇다나?

또 기관차에서 나오는 증기가 뒤로 날리면서 객차의 계단을 오를 때의 손잡이가 얼음으로 덮어있어 손으로 잡으면... 미끄러져 기차 밑으로 두번이나 들어가... 죽을 뻔하였네.

증기기관차는 두 종류가 있는데....

큰바퀴3, 작은바퀴 1개는 파시”, 작은 바퀴 4개만 달린 것은 미카”....

별 것이 다 기억나네.

 

중학교 때는 새벽부터 고등학교 선배들의 자리도 미리 잡이놔야 하기에... 기차가 정지하기 전에 용산중고교 지정칸에 미리 올라타(가방은 Back Bag으로 메고) 착석을 하고 있다가 정차 후 고교 선배들이 타면 양보해 주는 교육도 받았네.

대부분의 통학생들이 (학교,지역마다 다르지만) 같은 차량에 타므로... 어떻든 안양을 지나면...통학기차가 만원이 되어 서 있기도 힘들게 되므로 가방도 몇개씩 받아주어야 하고... 男女 모두 교복을 입은 시기라서 서로 어느 학교 몇학년인지는 알게 되었지.

내는 이러한 사정으로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은 마른 반찬이라 할 수 있는 뱅어포를 기본으로 준비해 주셨는데... 유리병에 김치를 준비하면... 기차안에서..밀려서... 혹은 싸음에 말려들면 유리병이 깨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여 가방, , 교복도 문제가 되지만... 김치국물이 흐르면 다른 학생의 가방이나 옷까지도 김치냄새가 나게 되니까, 이 덕분에 한때 별명이 뱅어포로 불렸네.

 

그다음... 부곡, 군포, 안양, 시흥, 노량진, 영등포, 용산을 거쳐 서울역에 내리면....이때부터 가방들고 달리기... 워낙 연착한 데다 서울역에서 후암동BUS는 드문드문,,, BUS가 와도 이미 학생들로 꽉 차 있어 탈 수가 없으니...검은 구렛빠 교복을 입고 달리고 달려... 정문에 도착하면... 지각했다고... 교실에 들어가도 늦게 왔다고... 모자 벗으면... 머리에서 찐빵처럼 김이 난다고 친구들은 놀리고...

그런데... 이런것은 힘들다 생각이 별로 안드는데... 수원에서 국민학교 시절에는 대충 놀아도 등수에는 들었는데... 全國에서 모인 龍山中 1학년 7... 미술선생님반... 첫 시험에서... 47(63名中)을 하여 나도 놀라고... 아버지는 더 놀라고...

이때부터 넘 어렵게(?) 살게 되었네...

아버지의 長男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크나... 평범한 내 능력으로 인재(?)들이 모인 학교에서 몇등 에 드는 것이 넘 어려웠네. 거기다 어느 때부터인가 통지표를 매달 우편으로 집으로 보내더라고... 그때는 아버지가 (몽둥이 들고) 기다리시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넘 무서워서 잠깐 가출도 했다가 바로 잡혀오기도 했지.

한번은 아버지가 아궁이에 내 가방을 태워버려... 청계천 8가에서 헌책을 다시 구입한 적도 있었고... 어머니는 내땜시 아버지와 다투시고... 지나고보니 능력도 없고 철없는 사춘기인 나에게는 정말로 힘든 집안 일(?)이었네.

 

그 당시 깨우친(?) ... 어머니가 내가 저녁 후 공부하다가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으니..어디서 들으셨는지...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소리를 듣고 밥사발로 가득 커피를 진하게 타 오셔서... 어머니를 믿고 다 마셨는데... 뱃속이 따뜻해지니 잠이 금방 오더리고... 그후로 다시는 어머니로부터 커피를 못 받았네.

 

그래도 중학교 때에는 해마다 아카시아가 만개할 때의 향기가 정말 좋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조회때 보면 南山꼭대기에서 뭔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더라고...

南山TOWER.....

南山... 수원에서부터 깡통, 젓가락 준비하여 기차타고 와서... TOWER HOTEL 근처에서 손가락만한 송충이 가득 채운 날도 있었네...

 

고교 진학후에도 기차통학은 변함없이 이어졌고... 南山TOWER는 완공이 되었고...

오랜 통학생활로 통학Know-How만 깊어지고...

Ex:개찰전 서울驛內에 미리 들어가 통학열차에 앉아 있으려면...

1. 신설된 京仁線 개찰구로 통학PASS를 보여주는 척 하면서 뛰어들어 가거나...

(나는 경부선 개찰구로 들어가야 하니까)

2. 서울역 건물 3층에 Grill(식당)이 있었는데... 우선 식당으로 들어가... 눈치보다가

GRILL주방으로 들아가면(주방후문이 서울역하므로...)... OK..

 

고교시절에는 내 생각에도 범생인 시절이나... 수업시간이 길어... 3학년때는 22:00까지 자습? ... 별 추억이 없는데...

3학년 때 대학시험 뵈야 한다고... 후암동 해방촌에서 하숙.

(그때는 하숙비가 1만원/... 쌀값 1만원/80Kg이 하숙비 기준이라고 쥔 아줌마 )

22:00에 자습 끝내고 해방촌 쪽으로 걸어가면... 그때가 보성여고 야간 퇴교시각... 마주치는 애덜이 넘 이뻣다... 교복도...

 

어쩌다가 후암동 영주교회에 갔다가 뭔 행사였는데... Flute부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Flute소리가 너무 좋아 어른되면 배워야지... 결심을 하였고... 결혼후 내는 기초만... 딸내미는 과천청소년단원까지 만들었으니... 목표는 달성하였네.

학교에서는 손홍빈 선생님이 현재 사는 (하숙)집이 젤 가깝다고 규율부를 시켜... 아침 일찍부터 규율부 뺏지하나 달고 정문에서 후배들 머리검사하였고...

하루는 서울시 자유교양대회에 출품할 것 있으면 내라 하여... 하숙집에서 국민학교때 배운 서예... 족자하나 만들어 제출했더니... 어느날... 수업중에 서울고등학교로 가라하여 물어물어 갔더니... 서울시에서 서예3등이라고... 1,2등은 여학생이던데... 단체사진도 없이... 상장받아 학교로 돌아와 선생님께 상장 반납하고... 그 담주 월요일, 조회시간에 따로 불러...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교생 앞에서 다시 상장을 받았네.

중고등학교 6년동안 교단으로 불려나간 것은... 이것으로 딱 한번이로세....

 

근디 잘 지내던 하숙집에서는 불상사(?)가 발생했는디... 국민학교 짝꿍이던 이쁜 상명여고 학생이 내 생일이라고 독수리의 벽걸이를 주어... 책상앞에 걸어두었는데... 야느날... 국민학교 동창 Mr.엄이 놀러 왔다가 그것을 보고 어디서 난 것이냐 하여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더니... 부엌에서 흉기(?)를 가지고 들어와... 도망치다가 평양출신 쥔 아지매에게 걸려 뭐하는 짓이냐고... 많이 혼났구먼. 짜슥 평소에 전혀 내색도 없더니...

아 나이 먹어도 그때의 일로 서먹서먹(?)한 것이 넘 웃기는 일 아이가?

 

Anyway, 세월이 빨라 이제는 모두 손주보는 에 사는 때인데... 지금도 그때의 친구들이 아직도 친구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수컷으로 태어나 부모님 덕에 잘 크고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생활 열심히 하였고...

이제는 애들 잘 키워 손주까지 보았으면... 역할은 다 한것 같네. 뭘 더 바랄 것인가?

 

단지... 人生을 글로 쓰자면... 起承轉結에서... 지금은 인생을 마무리해야하는 단계이니... 뭔가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가진 것을 모두 깨끗이 정리하고 마침표 찍고 잊혀지고자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어떡해야 하는지...

혼자만의 생각이 많은 시절이네.

 

어떻든... 옛말씀 그대로... 이제와서 뒤돌아보니 一場春夢, 南柯一夢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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